[ESSAY] 나는 어떤 일을 좋아하고, 싫어할까?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상하게도 나보다는 남을 신경쓰게 됩니다. 이름값, 성과, 매출, 반응… 그런 외부의 기준을 중심으로 말할 때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겠죠. 문제는 스스로도 그 틀에 갇히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일’에 대한 시선을 바깥이 아닌 내 안으로 돌려놓는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만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의 일을 평가하게 되거든요. 누군가의 시선과 무관하게 진짜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고 싶지않으신가요?
제가 감정을 기준으로 일 그래프를 그리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지난 일 경험을 돌아볼 때면 소속되어 있던 조직이나 맡았던 업무를 기준으로 나열하기 쉬운데요. (특히 이력서의 경우는 늘 이렇게 쓰게 되죠.) 나의 ‘감정’을 기준으로 놓고 스스로와 대화해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듭니다. 내가 가장 신나고 긍정적이었던 때는 언제지? 반면 어떤 일을 할 때 축축 처지고 가라앉았지?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그래프를 그리는 겁니다.
그래프를 그릴 때는 먼저 돌아보고 싶은 시간의 덩어리를 정합니다. 저의 경우 처음에는 거의 10년 치를 그렸고요. 그다음부터는 주로 6개월, 1년 주기로 일 경험을 회고하고 있어요. 감정을 기준으로 좋았던 순간은 위에,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던 일 경험은 아래에 점을 찍습니다.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되, 그 사이 감정의 파동도 자유롭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습니다. 무난했던 시기는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선으로, 여러 감정을 넘나들었던 시기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선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프를 다 그린 후에는 높은 곳에 찍힌 점들의 공통점을 ‘Good Point’에, 낮은 곳에 찍힌 점들의 공통점을 ‘Bad Point’에 기록해봅니다.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일이 꼭 저에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요. 반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일이라고 해도, 하다가 어그러진 일이라고 해도, 내 기준에서는 ‘인생의 프로젝트’인 것도 있거든요. 처음 이 그래프를 그려 눈앞에 펼쳐보았을 때 신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일의 경험이 재편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프를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그래프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아, 나는 확실히 이런 일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들 사이엔 이런 공통점이 있었네’, ‘역시, 이때 마음이 힘들었는데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어려워하는구나’ 이처럼 스스로에 대한 힌트를 적극적으로 발견해보세요.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 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21세기북스
특히 ‘좋은 것’뿐 아니라 ‘싫은 것’을 함께 살펴보는 일이 더 도움이 됩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나면 그것을 그만둘 용기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래프를 그릴 땐 최대한 솔직하고 시시콜콜해야 합니다.